• 2023. 4. 22.

    by. jeveux

     

     

    우리에게는 어벤져스의 헐크로 유명한 배우 마크 러팔로. 화려할 것 만 같은 그의 인생에도 여러 번의 굴곡이 있었다.

    과연 할리우드 배우의 인생은 어떻게 지나왔을까?

    영화 배우 마크 러팔로의 모습.
    출처 나무위키

    프로필

    본명 : 마크 앨런 러팔로(Mark Alan Ruffalo)

    출생 : 1967년 11월 22일

    국적 : 미국

    직업 : 배우, 사회 운동가, 프로듀서, 영화감독

     

     

     

    데뷔 전 

    그는 이탈리아계 이민 2세대로 페인트공 아버지와 미용사 어머니 밑에서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학창 시절 난독증과 ADHD로 인해 크게 고생했다고 한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의외로 운동선수로 활약하게 된다. 바로 레슬링이다.

    대학교에 전액 장학생으로 진학하려 했지만 형편이 안되어 포기하게 된다. 그때쯤 부모님이 파산하고 이혼하게 되면서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그 후 그는 연기학교에 진학한다.

    하지만 그는 극심한 생활고를 겪고 있었기 때문에 온갖 잡일들을 하면서 그의 점점 방황하기 시작한다.

    24살이 되던 해 절친한 친구가 먼저 세상을 떠나면서 어느 순간 그 친구의 몫까지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영화 '유 캔 카운트 온 미'의 한 장면
    출처 나무위키

    데뷔 후 

    데뷔 후 탄탄대로만 달렸을 것 같은 그이지만 생각만큼 배우의 길은 순탄치 않았다.

    연기학교를 무사히 졸업한 뒤 무려 10년의 긴 무명의 배우 생활이 시작된다. 

    바텐더, 도어맨, 요리사 등 온갖 막노동까지 해서 생계를 이어가야만 했다.

    10년의 기간 동안 800번이나 되는 오디션을 보았지만 계속 낙방하는 좌절을 맛봐야만 했다.

    당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등 할리우드는 미남 배우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크 러팔로와 동생 스콧 러팔로가 서로 포옹하며 웃고 있는 모습.
    출처 익스트림 무비

    스콧 러팔로

    이런 좌절 속에 빠졌을 때 그를 격려해 준 사람은 그의 동생 스콧 러팔로였다. 헤어 디자이너였던 그는 마크 러팔로를 여러 방면에서 지원하고  마크 러팔로가 포기하지 않도록 계속 옆에서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동생의 지원과 격려 덕분에 그는 영화 '유 캔 카운트 온 미'의 주연으로 발탁되게 된다.

    이 영화로 호평을 받은 후 그는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작품에도 캐스팅되는 등 활동이 활발히 이어졌다.

    이후 마크 러팔로는 배우 인생의 끝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심한 질병을 앓게 된다. 심하게 무너져있는 그를 일으킨 건 이번에도 동생 스콧이었다.

    동생이 적극적으로 재활치료를 도와주는 노력 끝에 마크는 다시 회복할 수 있었다. 

    다시 할리우드에서 활약하며 대배우에 이르게 된다.

    어쩌면 그의 인생 전반에 있어서 동생 스콧은 가족 그 이상의 소중한 존재이지 않았을까?

    그렇게 각별했던 형제 사이에 뜻밖에 비보가 전해진다.

    동생 스콧이 머리에 총상을 입고 사망하게 된 것이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동생의 죽음이었다.

    동생의 사망에 누구보다도 큰 충격을 받은 마크는 이후 배우 생활을 은퇴하려고 했지만 영화 '에브리바디 올라잇'에서 동생과 닮은 주인공을 다시 연기하며 다시 성공적으로 복귀하게 된다.

    오히려 동생 스콧의 죽음으로 인해 그는 이전에는 친구의 몫으로 살겠다는 다짐 이후 동생을 위해, 동생의 몫까지 살겠다고 결심하며 연기하지 않았을까?

    동생에 대한 헌사의 영화라고 생각된다.

     

     

     

    영화 '비긴 어게인'의 한 장면.영화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포스터.
    출처 네이버

    변환점

    마크 러팔로는 선라이즈 코이느니와 결혼 후 슬하에 1남 2녀를 두게 된다.

    이제 행복할 일만 가득할 거 같았던 그의 인생에 또 한 번 위기가 온다.

    갑작스레 뇌종양 판정을 받은 것이다.

    불과 아내가 출산을 2주 앞둔 상황이었다.

    종양은 골프공 크기만 한 크기였고 수술을 하더라도 무사히 수술이 끝날지 깨어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마크 러팔로는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곧 태어날 아들에게 유언을 남기게 된다.

    그리고 10시간의 걸친 대수술이 끝나게 되고 그는 다행히도 의식이 돌아온다.

    그의 목숨은 건지게 됐지만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수술 후유증으로 안면마비 증상으로 왼쪽 얼굴을 움직일 수가 없었고 청력도 점점 상실되어 가고 있었다.

    이건 배우로서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동생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그는 기적적으로 다시 할리우드로 돌아오게 된다.

    그 뒤 유명하고 굵직한 영화들에 출연하게 되면서 그는 배우로서 다시 자리를 굳히게 된다.

    이터널 선샤인, 조디악, 셔터 아일랜드, 나우 유 씨 미 : 마술 사기단, 우리나라에서 인기 많았던 비긴 어게인, 그리고 그의 대표작이 된 어벤져스까지. 

    그렇게 그는 우리가 사랑하는 멋진 배우가 되었다.

     

     

    더 강해져서 돌아왔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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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크 러팔로가 욕조에서 미소를 지으며 사진을 찍고 있다.
    출처 마크 러팔로 인스타그램

    배우에서 한 사람

    마크 러팔로, 그의 일생이 밑바닥에서부터 힘겹게 올라온 것이라는 걸 알고 화려하고 좋은 것들만 가득할 거 같은 할리우드 배우도 우리와 똑같은 위기와 슬픔을 겪는 인간이구나라는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오히려 그런 인간적인 면이 그의 강점인 거 같다.

    많은 위기와 헤어짐, 질병에 그는 지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고 다시 딛고 일어선 그의 용기가 대단하다. 그의 인생에서 그는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생각된다.

     

     

    영화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 보러가기

    영화보러가기 링크 이미지.